낙화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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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글:이복현
제가 좋아하는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를 올려봅니다.
꽃이 피고 지는 시간적 변화를 인간 삶의 역정과 대비시켜 한때 아름다움을 뽐내던
화려한 꽃들이 시절을 좇아 미련없이 지는 것처럼 후회없는 삶을 살고 두려움 없이
마지막을 향해 가는 담대함을 보이면서도 한편 그 이면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에
담긴 간곡한 아쉬움과 슬픔을 표현한 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낙화를 이별, 또는 죽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싶습니다. 하지만
낙화를 아름답게 바라보면서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고 있는 듯, 여기서 우리는
이별 혹은 죽음의 참된 의미, 즉 이별 또는 죽음이 우리 영혼 성숙의 필연적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이 시는 꽃잎이 지는 것을 인간의 삶에서 겪게 되는 이별 또는
죽음과 연관지어 바라보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