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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뒤집어 쓴 동백나무 숲 오늘 다시 뜨거운 옛 불씨 되살아나 입 가득 머금은 차고 맑은 웃음소리 들린다
기억 속의 어머니 손을 잡고 동화사 뒷길을 걸어내려 간다 냇돌 반지르한 살얼음 위를 차르르 흘러내리는 겨울 햇살의 따스함이여!
눈밭을 쓸고 가신 무명치마 자락에 걸려 넘어진 맑은 바람들이 싸 - 하니 들뜬 얼굴에 묻어올 때 목이 떨어져서도 미친 녀석처럼 히죽 히죽 웃고 있던 참수된 동백 - 붉은 머리들을 주워 주워서 지푸라기에 길게 꿰어. 인디언 추장의 부적처럼, 붉게 가슴을 적셨던 그 저녁의 마지막 해가 - 지금 가슴 한가운데 다시 떠오른다
목소리 쉬지 않고 천년을 넘어 울어온 범종소리
마음의 핏줄 하나 하나를 흔들어 깨워놓고 동백 숲 속으로 잦아들고 절간 옆구리에 깨진 기왓장 젖은 눈 희미해지면 촛불 밝힌 법당 안 독경 소리 은은하고 공양 올릴 저녁밥을 짓기 위해 행자승 한 분 부산히 정재소로 마른 장작 한아름을 안고 들어간다
숲을 꿰어온 바람 추녀 끝을 스치면 이른 별은 풍경 끝에 빛나고 어스름 저녁달이 대웅전 용마루에 턱 - 하니 걸터앉아 분주한 넋들을 거두어 거울처럼 비쳐주고 있다
일 배, 이 배, 삼 배, 사 배 … 수천 수만 배 기도의 손 모으는 사바의 중생들
금좌의 부처는 가만히, 침묵 속에 비움 없는 마음들을 내려다보고 빙긋이 웃고 있을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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