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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04] 류외향, 꿈꾸는 얼음
대동강 얼음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났으니, 아침부터 내리는 저 비는 봄의 전령이리라. 눈도 녹고 얼음도 녹고 뚝뚝 떨어져 흐르는 물들....
류외향 시인의 시심이 닿은 곳은 어디고, 그의 꿈길의 무늬는 무엇일까...
류외향 동인의 시, [꿈꾸는 얼음]을 네번째 발제시로 올린다.
끌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얼음 속 그 투명한 무늬를 보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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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얼음
류 외 향
창밖 풍경이 황량하다,라고 말하고 나는 잠잔다 긴 꿈의 강 은 얼어붙어 흐르지 않고 남쪽으로 날아가지 못한 철새의 가족 들, 얼음조각을 물어와 집을 짓는다 언제부터였던가 내가 떠나 보냈던 얼굴들이 거기 유골이 되어 붙박혀 있다 푸른 유골들, 춥다고 눈을 뜨며 달려오고 나는 아직도 온기 남아있는 유골을 끌어안고 비로소 깊은 잠을 잔다
나, 계곡과 하늘을 오르내리는 동안 가슴은 비어간다 빈 방 에 철창 하나 달고, 지난 계절 상처 입은 것들에 대해 무심히 조서(調書)를 쓴다 적당한 긴장과 적절한 거짓을 섞어가며 찬 바닥에 따뜻한 요를 깔고 빈 천장에 형광등을 단다 그래도 창 살 틈을 기웃거리는 꽃잎과 바람과 잎새,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속을 다 헐어내고 싶어진다 내 남은 그리움마저 픽션이라고 믿 어버리기 전에. 누구든 꿈꾸는 자는 유죄다
사람들은 내일을 살지 않는다 다만 살아보지 못할 날들을 그 리워할 뿐이다 미래는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깝다 이따금 내 꿈 은 부르튼 입술로 얼음 깨어지는 소리를 낸다 마냥 겨울뿐인 지대처럼 조금씩 녹았다가 한꺼번에 얼어버리는 꿈, 그렇게 무 거워진 몸으로 어디까지 왔는가 오긴 왔는가 돌아보니 빙판 위 에도 발자국이 찍혀 있다 문득 작은 새 한 마리 물고기를 입에 물고 얼음집으로 들어간다 언젠가는 남극에서 떨어져나온 빙산 이 여기까지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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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석방을 선언할 때를 함게 기다리며--
이 복 현
류외향 시인은 어쩜 나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 같은 해에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고, 또한 지금에 있어서는 나란히 빈터의 동인이 되어 있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그녀를 만나 오랜시간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로의 시세계에 대하여 진지한 담론을 펼진 적도 없었다. 오직 지면을 통하여 서로의 작품세계를 엿보고 격려할 뿐이다. 이제, 순전히 발제된 그녀의 작품과 그녀가 지금까지 발표하고 보여준 몇편의 시적 경향을 아우러서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과 해석으로서 그녀의 시세계를 엿보기로 한다, (단, 다른 작품에 대한 개별적 열거는 생략함)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관적 해석에 기저하므로 독자 여러분이 부분적으로 공감하거나 동의 할 수도 있겠지만 또한 여러분의 독자적 해석이 필요하리라 본다. ..................................... 시인 자신의 손에 들린 영혼의 거울에 투영된 시인 자신의 모습! 그건 차갑고 투명하고 고체화된 모습이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에 얼어붙은 꿈이 용해되기를 기다린다. 시인은 싸늘한 현실을 끌어안고 잠들지만 늘 흐르지 못하고 안타깝게 얼어붙은 현실에 대해 절망하지 않고 기다린다. 마치 따뜻한 남쪽으로 떠날 기회를 잃어버린 철새가 얼음집을 짓는 것처럼 ...시인은 꿈을 꾼다 , 그 꿈은 따뜻함을 찾아가는 꿈이며, 생명이 없는 유골처럼 싸늘하고 처연함을 끌어 안고 잠들지만 결국 시인은 그 자신이 따뜻함으로 녹아 흘러 모두에게 그 따뜻함을 나누어 주고 , 자신이 하나의 얼음조각이 되어 박제시킨 꿈들을 자유로운 세계로 해방시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꿈꾸면서 스스로 꿈꾸는 자의 유죄를 선언한 것이다. 그것은 시인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거울에 비쳐보듯 투영해 보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의 조서에 쓰여진 자아 읽기... 그것은 자신에게 긴장과 거짓으로 읽힌다 , 시인은 내면에 남아있는 마지막 그리움을 붙들고 싶어한다 . 그 마지막 그리움을 픽션이라고 믿고 싶지 않고, 그래서 그 그리움이 아직 픽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아슬아슬한 지금, 자신의 내면세계를 헐어내고 재구성하고 싶어한다.
시인을 포함한 우리는 늘 내일을 말하지만 언제나 현재인 오늘만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내일이 오늘이 되어 엄연한 현실로 나타나기 까지는 늘 하나의 꿈으로 남아 있을 뿐인 것이다.
시인은 철새처럼 따뜻한 영혼의 고향, 남쪽나라를 그리워 하면서도 결국 이 차거운 현실의 얼음집에 남지 않으면 안 된다. 시인은 그러한 현실을 안타까와 하면서도 그리움을 찾아 떠나지 못하는 어쩔수 없는 현실과 하나로 고체화 된다 . 그녀의 꿈은 고체화된 꿈이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그 고체화된 꿈 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꾼다 . 그것은 그리움이 내게로 흘러 오기를 기다리는 안타까운 꿈이며, 그러므로 그의 꿈은 어디까지나 꿈이니 만큼 , 때로는 꿈 속에 얼음 깨어지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것이다. 시인은 언제일지 모르나, 그렇게 되리란 걸 어느 정도 믿고 싶어하며, 그런 신념의 바탕 위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기운이 언젠가는 꿈의 덩어리인 시인 자신을 녹여 꿈과 그리움이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 될 것이라 믿는 것이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시인의 고체화된 꿈은 어쩜 처연한 슬픔의 빛깔로 우리에게 다가서기까지 한다. 이러한 시인의 고체화된 꿈이 따뜻한 온기를 만나 언젠가는 스스로 꿈의 석방을 선언할 수 있기를, 자신을 향한 유죄의 조서를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마디로 , 류외향시인의 시는 발제의 시 외에 다른 시편들과 함께, 맑고 깨끗한 심성에서 우러나오는 물줄기와도 같이 우리의 마음을 적셔주곤 한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시는 늘 동경의 세계를 지향하는 경향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현실적 경험의 세계를 구체화 하기 보다는 현실 속의 경험에 관한 느낌과 바램을 오버랩한 추상화를 그리기를 즐긴다 , 그러면서 그 즐거움을 관객이나 독자와 함께 나누어 갖기를 바라는 기저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 시가 갖는 묘사의 구체성을 결하기 쉽다는 단점이 있을 수 있고 시가 난해하게 되어, 공유의 폭이 좁아지고, 자신만을 위한 시가 되기 쉽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녀의 깊은 시세계를 탐사해 들어가면 깊고 오묘한 즐거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시에 있어서의 두 가지 잣대를 어떻게 계측하여야 옳은 것인가? 그것은 순전히 시인 자신 뿐만 아니라 독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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