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문학의 즐거움]

현대시조(제3목록-16편)

로뎀추리 2009. 9. 1. 16:06

[현대시조]
 
한밤중에 홀로 깨어
이복현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하나도
엮어 내고 싶은 저만의 뜻이 있어
자꾸만 몸을 뒤채며 잠들지 못한다

시간으로 벽을 쌓고 허물기 수 없어도
마음 앉을 자리 찾지 못해 방황하는
방목의 양떼와 같이 골짜기를 헤맨다

나는 누구인가? 끝없는 그 물음에
녹음에 짐 부리고 밤 새워 경을 읽는
풀벌레 가르침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현대시조]
 
한밤중에 홀로 깨어
이복현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하나도
엮어 내고 싶은 저만의 뜻이 있어
자꾸만 몸을 뒤채며 잠들지 못한다

시간으로 벽을 쌓고 허물기 수 없어도
마음 앉을 자리 찾지 못해 방황하는
방목의 양떼와 같이 골짜기를 헤맨다

나는 누구인가? 끝없는 그 물음에
녹음에 짐 부리고 밤 새워 경을 읽는
풀벌레 가르침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현대시조]
 
곰소나루에 밤이 오면
이복현
 
 

발목 빠지는 진흙뻘밭
고된 삼의 물꼬따라
강물 가득 들여놓고
어디 한세상 출렁여나 보자
머리채
풀어헤쳐 놓고
진종일 실컷 울어나 보자

내소사 저녁종소리
달빛 타고 내리면
물새소리 가득 싣고
나루에 닿는 밤배
비릿한 젓갈냄새가
내 공복을 깨운다

 

 

[현대시조]
 
그리움도 이렇듯
이복현
 
 

배추꽃 흰나비 가슴으로 날아들고
햇살이 날개를 펴 장미순에 와 앉으면
삘기꽃
사랑니 트는 소리에
아지랑이 깨어난다

그리움도 이렇듯 한 순간에 솟아나
햇살처럼, 바람처럼, 꽃잎 트는 소리처럼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촉을 틔워 자란다

 

[현대시조]
 
화장기 짙은 여인에 대하여
이복현
 
 

그립다 건초 냄새가, 그 하오의 햇살 속
인공의 향기로 숲은 설레지 않아
풀 냄새 풀풀 날리는 그런 사람 없을까

백합의 골짜기에 황토내음 같은
그런 여인이면 좋겠다
몹시 사랑스럽겠다
이슬로 얼굴을 씻고 햇살로 분 바른,

 

[현대시조]
 
석류
이복현
 
 

돌담에 기대서서 저녁을 맞는 아낙

꿈꾸듯 살아온 날
잃은 길을 더듬어

그늘진
눈동자 깊이
꽃노을이 고인다

열릴 듯이 입 다문 황금비단 주머니
가을 내내 거둬 담은 빛
끈 풀리는 날이면
홍보석
찬란한 꿈이
우두두두 쏟아질 듯

 

 

[현대시조]
 
밤하늘
이복현
 
 

불혹의 강을 건너 지천명을 향해 가는
깊고 푸른 바다에 빈 배 한 척 출렁인다
격랑의 파도를 넘어
꿈을 향해 돛을 편다

하얀 모시적삼 곱게 땋은 낭자머리
누이는 풀밭에 앉아 벌레들을 깨우고
애기별 푸른 눈동자
소매 끝에 달린다

 

 

[현대시조]
 
한 그루 나무 되어
이복현
 
 

곧은 줄기 성근 가지
나도 한 그루 나무 되어
마지막 한 꺼풀 속옷마저 벗고
맨몸에 빈손 들고서 산비탈에 섰거니

어둠은 곤한 숲을 잠재우려 하지만
바람결에 깨어난 저 벌레 울음소리
길 잃은
새 한 마리가
빈 가슴을 파고든다

 

 

[현대시조]
 
기억의 숲
이복현
 
 

1. 그늘
그림자를 먹고 자란 독버섯 한송이
상처 아문 자리마다 윤이 나는 흉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꽃을 피워 웃고 있다

2. 관솔
살 패인 뼈마디에 흰피톨이 굳어 있다
옹이진 자리마다 고통의 꽃 붉게 폈다
뭉쳐진 체액을 살라
어둔 세상 빛이 되려

 

 

 

 

 

[현대시조]
 
삶의 꽃
이복현
 
 

눈물도 한 송이 꽃이라면 꽃이지
흐린 세상을 맑히는
빈 하늘을 적시는,
깨끗한
꽃받침 위에
영롱함을 눈 띄운,

 

[현대시조]
 
빛이 있는 곳으로
이복현
 
 

동트는 강가에서 밝은 세상을 꿈꾸면
한 세기의 어둠을 몰고 물 건너는 바람소리
마침내
하늘문 열리고
큰 빛 하나 내려온다

강나루 빈 배 위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
메인 마음 어느새 닻줄을 풀어 싣고
또 다시 천년을 향해
돛을 높이 올린다

 

[현대시조]
 
마음의 등불
이복현
 
 

가늘한 바람에도 늘상 흔들리면서 
심지 맑게 젖어 있는 등불 하나 있다 
날마다
묵념을 담아
하늘길을 여는,

풀씨 같은 별들이 
곱게 싹을 틔워
허허로운 가슴을 푸르게 점령해 올 
그 날을 
기다리면서
생의 뜰을 밝힌다 

 

[현대시조]
 
삶의 꽃
이복현
 
 

눈물도 한 송이 꽃이라면 꽃이지 
흐린 세상을 맑히는
빈 하늘을 적시는, 
깨끗한 꽃받침 위에 
영롱함을 눈 띄운,

 

[현대시조]
 
비자나무에 걸어 두고 온 노래
이복현
 
 

우거진 숲 사이로 이슬길 밟아 갈 때 
백양사 쌍계류 귀를 트는 물소리
때묻은 영혼을 씻어 
천길 벼랑에 던진다

산산이 깨어져 울던 그 날의 목소리
비자나무 가지마다 나부끼던 노래
봄이면 응혈진 핏줄을 뚫어
푸른 꿈을 피우리라

[현대시조]
 
화석
이복현
 
 

백년도 못 되어 삭아질 육신으로 
천년도 못 되어 잊혀질 이름으로 
만년을 견디지 못해 흩어질 넋으로 나

부르짖던 자유, 흐느끼던 노래도 
자황빛 석층의 틈바귀에 끼어서 
녹이 슨 소리의 흔적 비문처럼 새겨 있다 

상처를 만져본다 떨리는 손끝으로
억만년 세월이 갇혀 있는 감옥, 
견고한 시간의 틀 속에 압정된 침묵을,

나도 언젠가는 돌꽃이 되리라
어떠한 언어로도 어떠한 노래로도 
끝끝내 채우지 못할 빈자리로 남으리라

욕망이 부풀수록 생은 더욱 무거워져
모든 것이 공허한 꿈인 걸 보여주기 위하여
눈물빛 차랑한 아픔을 돌 속에 묻으리라


 

[현대시조]
 
광화문
이복현
 
 

1. 닫힌 마음 문을 열면 눈물 고이는 하늘 뵌다
   질 고운 청자하늘 머리에 인 저 광화문
   이끼진 용마루 끝에 가을빛이 눈부시다

2. 한 왕조 품어 안은 아미산을 등에 업고 
   빛나는 아침해를 가슴으로 받아 안아 
   육백년 한을 접어서 침묵으로 앉았다 

3. 임진년 그 수난을 아리게 여며 안고 
   타오르는 눈동자에 핏발 아직도 덜 삭아서
   이 가을 훤한 불길로 등줄마다 치솟는다

4. 저 부리 한을 쪼아 북악은 눈이 먼데 
   날 푸른 한천을 접어 아픈 역사 헤아리며 
   아직도 몸을 못 푼 채 슬픔을 품은 새야!

5. 오랜 세월 적막을 깨고 일어서는 까치소리
   문설주 돌쩌귀마다 새긴 뜻을 찾으란다
   광화문 주춧돌마다 눈물 다져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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