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거울(신작)

평론 외 3편 / 이복현

로뎀추리 2017. 8. 9. 14:01




평론


    

이상한 잣대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상한 가위를 손에 쥔 사람들이 있다.

  

길게 뻗은 가지를 억지로 휘어 앉혀

칭칭 동여맨다. 잘 전지된 분재처럼

숨겨놓은 길이를 잃어버린 척도법(尺度法)

진짜라고 믿는,

이상한 밧줄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생각을 꽁꽁 묶어버리는

압제의 손이 있다.

 

왼쪽어깨를 드러냈는데, 그의 눈은

오른쪽 가슴을 봤다고 이야기한다.

  

현상은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인식의 알을 낳는다.

그래서 아무도 모른다.

오감을 다 통과 했다지만

비슷한 껍질의 알 속에서

전혀 다른 병아리를 낳는다

   

그것은 알의 잘못인가

알을 품은 어미닭의 잘못인가.

어떤 닭은 알을 낳고

어떤 닭은 알을 품어 병아리를 낳는다

 

어떤 나무는 분재되기 싫어

깊은 숲에 숨는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나무는 마음대로 전지되고

어디에서 자라건

살아있는 나무의 푸름은 여전하다






축하(祝賀), 혹은 축의(祝儀)



 

축하, 축하라곤 하지만

다른 이의 경사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일에

사람들은 대부분 인색하다.  

 

나 자신부터 그럴 때가 많으니,

다 알지만 오해는 없다.

 

어느 날 이십여 년을 알고 지낸 한 친구가

내 어머니 팔순 잔치 마당에

기분 좋게 술 한 잔 거나해져서

처음으로 진실하게 내뱉은 말

 

자신은 수년 전부터 나의 조모님 조상(弔喪)부터 시작해서

내 아버지 칠순 잔치, 내 아버지 장례까지 다 다녀갔고

빠짐없이 축의, 부의 다 했는데 또 다시 오늘에

내 어머니 팔순잔치라고...

그간에 자신은 한 번도 큰 대사를 치룬 적이 없어

축의, 부의 받은 적이 없어 막중한 손해를 본 느낌이란 것이다

  

, 그러고 보니, 이 세상 축하받는 일도 빚이고, 위로 받는 일도

빚이로구나! 나는 누구에게 빚진 일이 없는지... 괜스레 마음이

답답해진다.

사람이 살며, 꼭 누구에겐가 물질로서 위로하고 축하하며 감사할 일은

아니라지만, 우리들 마음이 하시로 간사하니 인정할 수밖에

  

그래서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여보게 친구, 어서 어서 축하할 일들을 많이많이 만들게, 하지만 행여

부의금이 생각나서 일찍 세상을 뜨는 일이야 있어서 되겠는가

        

농담처럼 한 말이 씨가 되었나, 그 친구 몇 년 후에 중한 병을 얻어

온 몸이 메마르고 시름시름 하더니,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

 

사람이 한갓, 나고 지지만, 제 스스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무도 모르게

슬금슬금 다가오는 운명이 아니던가, 숙명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

그래도 지나는 인사로 축하하는 것하고, 그럴 듯이 참아주는 것도

아름다운 축하의 한 가지가 아니겠는지 

 

나는 네 곱절의 부의로 그를 전송하였다





    

 

부고(訃告)



오늘 저의 죽음을 알립니다

  

저는 정든 이 세상을 떠나

지금

지레 짐작, 몇 억 광년 쯤 떨어진 여기

하늘의 외딴길 카시오페아 쯤에 와 있는 걸

전하려 합니다.

 

사랑했다고 말하려고요.

지금은 죽었지만, 살아있을 때

참 고마웠다고 말하려고요.

지나고 나니, 눈물 같은 거, 슬픔 같은 거

별거 아니라고 말하려고요.

 

그렇게 짧은 여행 동안,

너무나 쓸데없는 생각과 이기심에 억매여 잃어버린

시간들이 아쉽기만 하단 걸, 꼭 꼭 전하려고요.

  

무엇을 위해 살았다고 하지만, 결국 그 무엇이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끝끝내 말해주려고요.

 

그렇지만 아직 사랑합니다.

사랑은 정말, 고루한 말처럼 들리지만,

수억 광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여전히 내 맘 속에 남아 있으니까요.

 

당신의 눈에서 제 모습은 사라졌지만,

저는 여전히 제 혼의 혼속에서 당신을 기억하고 사랑하니깐,

당신도 반드시 저를 그렇게 사랑해 주세요.

 

안녕!

저는 이미 그대의 세상에 없기 때문에 구태여

영안실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부의를 전하거나 조문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그대의 마음에 저를 위해 국화 한 송이 놓아주십시오.

계절이 변하여도 시들지 않는, 하얀 국화 한 송이

제 얼굴처럼 꺼내 볼 수 있는, 창백한 추억 한 송이


    


 

 

쿠데타와 혁명


  

박 아무개가 탱크를 끌고 대한민국 서울 한 복판을 관통하여

아니, 백성의 가슴을 깔아뭉개며 중앙청 광장으로 나아가

푸른 기와집까지 입성한 것이

 

혹자는 혁명이다, 혹자는 쿠데타다, 지금도 갑론을박 말이 많지만

혁명이냐, 쿠데타냐 하는 것은 오로지 부표처럼

지혜로운 백성의 가슴속에 있다      

 

쿠데타는 목숨 걸고 동조하는 세력이 없이는 혼자서 이룰 수 없다.

혁명은 단 한 사람의 외침, 단 한 사람의 죽음으로도 족하다.

 

쿠데타는 한 무리가 얻고자하는 것을 얻으면 종식되지만

혁명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가슴 가슴에 살아남는다.

 

그러므로 혁명은 혼자서도 천군만마를 이기고 남는다

  

그것이 쿠데타고, 그것이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