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거울(신작)

노동의 노래 외 3편 / 이복현

로뎀추리 2017. 8. 9. 14:08


노동의 노래 


 



꽃이 피어도 봄은 오지 않았죠


폐 염전 해수처럼 짜디짠 이마


땀에 저린 셔츠는


얼룩으로 수 놓인 성스러운 생()의 깃발


 


기억합니다


그대가 있음으로 외롭지 않았음을,


그대가 있음으로 견디었던 절망,


그대가 있음으로 따스했던 겨울


야간조업장의 형광불빛을,


 


싸락눈이 유리창을 두드리던 저녁  


목탄난로에서 뿜어져 나오던


뜨거웠던 청춘의 열정


그 안에서 불타오르던 사랑은


두려움 없는 설렘을 감싸 안았죠


 


그대도 기억하겠죠


고향을 향한 달밤의 기도


비 오는 밤, 어둑한 슬픔을 녹이던


라면국물처럼 뜨거웠던 눈물을,









개화(開花) 1.



 

 

닫혀있던 봉오리가 서서히 열리고 있다.  


창조의 날에 신세계가 열리듯


수평선 위로 햇덩이가 솟아오르듯


 


꽃을 피운다는 건


잠겨있는 몸을 처음으로 여는 일


어둠에 갇혀있던 생명의 기운을


햇빛 아래 비로소 드러내는 일


 


그것은 사랑을 얻기 위한 최초의 균열


극렬한 아픔 끝에 터져 나는


환희의 절정이다


 


찢겨 터진 가슴으로


우주의 숨결을 몸 안 깊숙이 빨아들여


낱낱의 씨앗에 함봉하는 일이다


 


아 ㅡ  아 ㅡ


그대는 듣는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절정의 순간  


목구멍 속에서 저절로 터져나는  


꽃의 비명을,


 


보라!


극렬한 아픔 뒤에 피어나는,


저 만개한 환희의 웃음을,


 


 






 

 


  

부활(復活)


 


  

죽음으로 획득한 씨알이 아니면


어떠한 생명도 담지 못하리


 


죽음은


낡은 시간의 껍질을 벗고


순전(純全)한 새 옷으로 갈아입는 일


 


그러므로 단언컨대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눈뜨기 위해


잠시


생명의 그릇을 옮겨 담는 일일 뿐


 


층층이 하늘을 향해 뻗쳐오르는


푸르고 꼿꼿한 대나무처럼


한 매듭의 끝에 잇대고 또 잇댄


끊임없는 목숨줄기


그 한 고비를 쉬어가는 숨 고르기일 뿐


 


그러므로 부활은


저 아득히, 까마득한 날에  


맨 처음 태동한


최초의 생명에 연원(淵源)한다.









어머니

 

     

잘 닦인 보석처럼 소중한 이름 하나

등불 환히 밝힌 가슴에 있습니다.

뜨거운 눈물로도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그 이름, 어머니!

 

깊은 어둠에서 건저올린 별처럼

몇 억 광년 너머의 벅찬 그리움

외쳐 불러도 소리 닿지 않는 거리

꿈속이나 오가며, 부르고 또 불러봅니다.

 

일찍 소풍 끝내시고 돌아가신 고향집

오늘밤도 툇마루에 등불 밝혀 내거시고

밤 깊도록 못난 아들 기다리고 계실지

 

보석 같은 그 이름 다시 불러봅니다.

가장 먼저 아파하고 가장 나중 누우신,

존귀하신 그 이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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