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노래
꽃이 피어도 봄은 오지 않았죠
폐 염전 해수처럼 짜디짠 이마
땀에 저린 셔츠는
얼룩으로 수 놓인 성스러운 생(生)의 깃발
기억합니다
그대가 있음으로 외롭지 않았음을,
그대가 있음으로 견디었던 절망,
그대가 있음으로 따스했던 겨울
야간조업장의 형광불빛을,
싸락눈이 유리창을 두드리던 저녁
목탄난로에서 뿜어져 나오던
뜨거웠던 청춘의 열정
그 안에서 불타오르던 사랑은
두려움 없는 설렘을 감싸 안았죠
그대도 기억하겠죠
고향을 향한 달밤의 기도
비 오는 밤, 어둑한 슬픔을 녹이던
라면국물처럼 뜨거웠던 눈물을,
개화(開花) 1.
닫혀있던 봉오리가 서서히 열리고 있다.
창조의 날에 신세계가 열리듯
수평선 위로 햇덩이가 솟아오르듯
꽃을 피운다는 건
잠겨있는 몸을 처음으로 여는 일
어둠에 갇혀있던 생명의 기운을
햇빛 아래 비로소 드러내는 일
그것은 사랑을 얻기 위한 최초의 균열
극렬한 아픔 끝에 터져 나는
환희의 절정이다
찢겨 터진 가슴으로
우주의 숨결을 몸 안 깊숙이 빨아들여
낱낱의 씨앗에 함봉하는 일이다
아 ㅡ 아 ㅡ
그대는 듣는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절정의 순간
목구멍 속에서 저절로 터져나는
꽃의 비명을,
보라!
극렬한 아픔 뒤에 피어나는,
저 만개한 환희의 웃음을,
부활(復活)
죽음으로 획득한 씨알이 아니면
어떠한 생명도 담지 못하리
죽음은
낡은 시간의 껍질을 벗고
순전(純全)한 새 옷으로 갈아입는 일
그러므로 단언컨대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눈뜨기 위해
잠시
생명의 그릇을 옮겨 담는 일일 뿐
층층이 하늘을 향해 뻗쳐오르는
푸르고 꼿꼿한 대나무처럼
한 매듭의 끝에 잇대고 또 잇댄
끊임없는 목숨줄기
그 한 고비를 쉬어가는 숨 고르기일 뿐
그러므로 부활은
저 아득히, 까마득한 날에
맨 처음 태동한
최초의 생명에 연원(淵源)한다.
어머니
잘 닦인 보석처럼 소중한 이름 하나
등불 환히 밝힌 가슴에 있습니다.
뜨거운 눈물로도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그 이름, 어머니!
깊은 어둠에서 건저올린 별처럼
몇 억 광년 너머의 벅찬 그리움
외쳐 불러도 소리 닿지 않는 거리
꿈속이나 오가며, 부르고 또 불러봅니다.
일찍 소풍 끝내시고 돌아가신 고향집
오늘밤도 툇마루에 등불 밝혀 내거시고
밤 깊도록 못난 아들 기다리고 계실지
보석 같은 그 이름 다시 불러봅니다.
가장 먼저 아파하고 가장 나중 누우신,
존귀하신 그 이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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